쇠파리, 소크라테스

최용훈교수님 가톨릭관동대학교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자신의 부유한 친구 크리톤에게 했던 마지막 말은 이랬습니다.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우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졌네. 잊지 말게.” 아스클레피우스는 그리스 의료의 신(神)이었고, 수탉은 병에서 회복된 것에 대한 감사로 바치는 당시의 일반적인 제물이었습니다. 흔히 그의 이 말은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이란 '삶이라는 질병에서의 치유'로 여겨진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또한 죽음에 대한 그의 초연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죠. 그는 왜 삶을 질병으로 여긴 것일까요? 만일 그러하다면 소크라테스의 삶에 대한 모든 말과 가르침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요?

“사실 죽음의 공포는 현명하지 못한 그대가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네.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죽음이 인간 최고의 선(善)이 될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야. 하지만 그들은 죽음을 최대의 악(惡)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라네. 이러한 어리석음은 진정 가장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겠나.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야.”

많은 이들에게 소크라테스는 서양 철학의 토대를 세운 위대한 사상가입니다. 하지만 플라톤이 기술한 ‘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y)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쇠파리’에 비유했습니다. 자신은 평생 동안 게으른 말의 등짝에 붙어 괴롭힌 쇠파리라는 것이었죠. 다시 말해 인간이 잠자는 무지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간섭한 성가신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무기력에 빠진 인간의 삶을 지적하고, 그 나태와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을 질병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의 가장 큰 가르침은 무기력하고 병든,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것이었죠.

“오 친구여, 위대하고 강하며 현명한 아테네의 시민이여. 그대는 왜 돈과 명성을 모으는 데에만 몰두하고, 지혜와, 진리, 영혼의 개선에는 그토록 소홀하여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가. 그대는 정녕 부끄럽지 아니한가?”

우리의 삶을 돌아보세요. 우리가 행복이라는 것을 위해 추구해왔던 것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2500년 전의 사상가가 지적한 사실이 오늘의 우리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지 말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고, 인간이 지니는 성격적 결함(하마르티아, hamartia) 역시 달라지지 않은 것이었죠. 그래서 우리는 철학적 사유, 문학적 창의성, 역사적 경험이라는 인문학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척박하고 메마른 삶에도 소크라테스 같은 쇠파리가 너무도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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