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글이란?

최용훈교수님 가톨릭관동대학교


플라톤이 기록한 소크라테스의 대화 속에 ‘글’(writing)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제자인 파이드로스와의 대화 속에서 ‘글’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 고대 이집트의 도시 나우크라티스에 테우스라는 신이 있었어. 그는 숫자와 계산법, 기하학과 천문학의 시조였을 뿐 아니라 체커스(체스와 비슷한 서양의 놀이)와 주사위,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writing)을 발명한 존재였지. 당시 이집트 전체를 통치하던 왕은 타무스라는 인물이었는데 테베라는 곳에 살고 있었어... 테우스는 타무스 왕을 찾아가 그에게 자신이 만든 기술들을 보여주고 그것을 모든 이집트인들에게 전파해줄 것을 요구했지. 타무스 왕은 그의 기술들 하나하나에 대해 그 유용성을 물어본 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사를, 그르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네.

타무스는 테우스의 기술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다 말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야. 그래서 ‘글’에 대해서만 말하지. 테우스는 이렇게 말했어. “왕이시여, 이것은 한 번 배워두면 모든 이집트인들을 더욱 현명하게 만들어줄 것이고, 기억력도 크게 향상할 것입니다. 나는 기억과 지혜를 위한 약을 만든 것이에요.” 그러자 타무스는 이렇게 대꾸했지. “오 현명한 테우스 신이시여. 누구나 기술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이익이 될지 해가 될지는 그것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지요. 당신은 ‘글’을 창조했지만 그것에 지나친 애정을 갖고 있어서 실제와는 반대되는 효과를 말씀하고 계시는구려. 사실 ‘글’은 그것을 배우는 자의 영혼에 망각을 심어놓을 것 이외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글’ 안에 적어둠으로써 자신의 기억을 사용하는 연습은 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글’은 외부적인 것이고 다른 이들이 만든 기호에 의존하죠. 당신은 기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다시 떠올리는 것을 위한 약을 만들었을 뿐이요. 실제가 아니라 지혜의 겉모습만을 전하는 것이지요. 당신의 발명품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배우지 못해도 많은 것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어 자신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겉으로만 현명하게 보일 뿐이지요. 진실은 그렇지 못한 데도 말입니다. “

파이드로스 : 선생님은 이집트든 어디든 다른 곳의 이야기만을 들려주시는군요.

소크라테스 : 파이드로스, 도도나에 있는 제우스 사원의 사제들은 첫 예언이 참나무의 말이었다고 말하고 있네.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자네와 같은 오늘날의 젊은이들만큼 현명하지 못해서 단순하지만 참나무나 심지어 돌에게까지 귀 기울이는 것이 가치 있음을 알았지. 그것이 진실을 말하는 한에는 말이야. 누가 이야기하고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가 하는 것이 자네에게는 중요할지 몰라. 하지만 그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하네. 그것이 중요하니까.

파이드로스 : 알겠습니다. 선생님. 저도 테베 왕의 말에는 동의를 합니다.

소크라테스 : 그래. 하나의 기술에 대한 지침을 글로 써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글쓰기가 분명하고 확실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리석으리만치 단순하고, 타무스의 예언적 판단에 대해 전혀 무지한 사람임이 틀림없어.

파이드로스 : 맞습니다.

소크라테스 : 글은 그림과 묘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어. 그림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남아있지만 사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 쓰인 글도 마찬가지야. 마치 무엇을 알고 있는 듯 말하지만, 더 알고 싶어서 무언가 질문을 던지면 그저 계속해서 같은 것만을 반복할 뿐이야. 일단 글로 써지면 모든 이야기들은 모든 곳을 배회하면서,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다가간단 말이야. 글은 누구에게 말하고 누구에게 말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몰라. 만일 잘못이 있거나 부당하게 공격을 당하면, 글은 그것을 쓴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지. 혼자서는 자신을 방어하지도 스스로를 돕지도 못하는 것이야.

파이드로스 : 정말 그렇군요.

소크라테스 : 자 이제 우리는 다른 수단을 떠올려보자고. 이를 대체할 수 있으면서도 더 낫고 쓸모 있는 것 말이지.

파이드로스 : 그게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 : 그것 역시 써진 이야기야. 다만 지식과 함께 쓰고, 듣는 이의 영혼 속에 있는 글이어야지. 그래야 스스로를 방어하고, 누구에게 말하고 누구에게 침묵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테니까.

소크라테스의 이 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디지털 혁명 이후 세상은 문자를 발명한 후의 세상처럼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지요. 휴대전화로 인해 가까운 사람의 전화번호나 주소를 외우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억을 무한히 확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치는 순간의 우리 모습을 떠올려보면 우리의 기억이 오히려 쇠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사실 내비게이션 없이 모르는 곳을 찾아갈 생각은 거의 못하는 것이니까요. 어쩌면 디지털 기계들은 우리의 마음에 ‘망각’을 심어놓고 있는지 모릅니다.

소크라테스는 결국 ‘글’의 대안으로 또 다른 ‘글’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그 글은 두 가지의 미덕을 지니고 있어야죠. 첫째 ‘지식과 함께 써져야 한다’라는 사실입니다. 이런저런 글을 무차별적으로 던져놓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마음에 찔리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도 잘 모르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일인지요. 스스로를 지키지도 돕지도 못할 글들을 세상에 풀어놓으면서도 두려움이 없었던 저를 반성합니다. 또 한 가지는 글을 읽는 사람의 ‘영혼 속에 있는 글’이란 표현입니다. 자신의 글에 귀 기울이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 글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못합니다. 글은 영혼의 공감뿐 아니라 상대에 대한 끝없는 이해와 사랑을 담아야 하는 것이죠. 그런 글만이 언제까지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소크라테스는 글을 두려워하고 글을 읽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는지 모르죠. 하지만 그의 가르침을 우리가 플라톤의 글로써 배우고 있음은 아니러니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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